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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 | 효율성?

dBals.tn 2023. 1. 19. 05:05

부산직할시 남구 민락동(현 부산광역시 수영구 민락동)에 살 당시, 그러니까 1988년에서 1991년 사이, 타고난 대로 혼자 놀고, 읽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즐겼었는데 어디선가 최단 거리 이동이 에너지를 가장 적게 쓰는 방법이라고 주워 들었는지, 몇 가지 과업을 부여받으면, 예를 들어 대문 잠그고 연못에 물 넣어주고 강아지에게 밥을 주고 나면 TV를 볼 수 있다는 조건이 주어지면, 일의 순서, 이동 경로를 정하여 시뮬레이션 후, 스톱워치를 켜고 시나리오대로 과업을 처리하고는 혼자 뿌듯해하면서도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더 줄일 수 있을지, 비효율적인 동작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곤 했고 이러한 놀이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어 습관화에 성공, 결국 나는 게으른 사람이 되었다.

비효율의 극치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 조직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인구가 늘어날수록 또는 인원 교체가 잦을수록, 즉 조직이 비대해질수록 비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인데, 비효율적인 일이라면 대표적으로 쌓여있는 이메일 처리라고 할 것이다. 아웃룩을 열어 읽지 않은 메일을 보기 시작하면, 내가 관여하여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최종 버전은 무엇인지, 놓친 메일이 있는지 살펴보게 되고, 쓸모없는 회신을 하려고 메일을 쓰려니 귀찮아 유선으로 처리하고자 건 전화가 되려 긴 통화로 이어지는 등 메일을 처리하면서 일할 시간을 잃게 된다. 비효율적인 승인 절차도 마찬가지인데, 우리 사무실 기준으로 고작 100만 원짜리 매출 세금계산서 하나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파트너 레벨 독립성 검토, 실무팀의 계약 전 위험평가, 품질관리실의 계약심사, 관리부서의 계약코드 등록 절차가 이루어져야 하며, 아무리 빨라도 하루 안에는 처리되지 않는다. 이 외에도 조직차원의 필요성은 이해는 되나 사람 속 터지게 하는 절차가 즐비하다. 그리고 마음먹으면 회피 가능한 보안 프로그램과 통제 절차들도 있는데, 예를 들자면 문서를 작성하면서 검색할 내용을 워드에서 카피하여 검색창에 붙이면 엉뚱한 문구가 달라붙어 업무 속도를 아주 느리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조직의 비효율성을 상징하는 것은 바로바로 "회의", 일방적으로 정보 전달만 하는 회의, 주제 없는 회의, 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회의, 결론 없었던 직전 회의 결과를 놓고 다시 회의, 시장 조사 없는 사업 아이템 회의 등등등.

이러한 활동들은 조직에서 필요한 일이지만, 조직 구성원의 시간을 좀먹으면서 전체 조직이 느려지게 만들고 결국 고착화되어, 조직이 골관절염, 류머티즘관절염, 골다공증, 고혈압, 고지혈증, 뇌졸중, 협심증, 심근경색증, 당뇨병, 갑상선 질환, 요통, 좌골신경통, 만성기관지염, 폐기종, 천식, 폐결핵, 결핵, 백내장, 녹내장, 만성중이염, 악성신생물(암), 위‧십이지장궤양, 간염, 간경변, 만성신장질환, 전립선비대증, 요실금, 빈혈, 피부병, 우울증, 치매, 골절, 탈골 및 사고후유증, 불면증, 파킨슨, 노인성 난청 등의 노인성 질환을 앓게 만든다. 이런 조직에 속한 구성원들은 보여주기식 야근, 비주얼만 좋은 영양가 없는 보고서 작성, 쓸 모 없는 업무 보고, 하급자의 책임 회피성 시간 끌기(리뷰할 시간을 없앰으로써 업무의 퀄리티는 낮아지고 서비스의 만족도 저하를 초래한다), 상급자의 생트집 내지 똥고집, 조직 자원을 사적 이익 추구 수단으로 사용(조직 생활하면서 딴 주머니를 차는 것으로 사실상 배임이다), 생산적이지 않은 경쟁과 사내정치, 밥그릇 지키기 위한 파벌 등을 통해 회사의 성장(또는 생존) 동력을 떨어뜨린다.

결국 조직의 비효율적 운영을 통하여 득을 보는 사람들은 free-rider들, 약삭빠르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조직의 성장을 위해서는 제거해야 한다.